첫눈이 내리던 밤
오늘 밤, 나는 혼자 눈길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발자국 하나하나가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지는 그림 같았다.
내 숨결이 하얀 입김이 되어 공기 중으로 스며들었다. 어릴 적엔 그 하얀 입김으로 기차 연기를 내는 척 장난치곤 했었지. 그때는 이렇게 고요한 밤에 혼자 걷는 일이 낯설었는데.
한 걸음, 또 한 걸음.
푹신하게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가 내 발걸음에 맞춰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건 시간이 내게 건네는 위로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들려오는 차 소리마저 눈에 덮여 부드럽게 들렸다. 도시의 거친 소음들은 모두 눈 속에 파묻혀 버린 듯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온통 하얀 솜으로 덮인 것 같았다.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송이들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눈이 볼에 닿아 녹아내리는 순간의 그 감각이 왠지 그리웠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어릴 적 첫눈이 내리면 항상 설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세상이 마법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도 그 마법은 여전히 유효한 걸까. 까만 하늘과 하얀 눈의 대비 속에서, 나는 문득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돌아가는 길,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하나둘 새로 내리는 눈에 지워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흘러가듯 희미해지는 과거처럼.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 쌓이는 눈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발자국들은 비록 눈이 덮어버리겠지만, 분명 그 순간만큼은 의미 있는 흔적이 될 거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영원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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