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마지막 산책
매일 아침 여섯 시, 할아버지는 산책을 나가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혼자서 걸으시는지.
할아버지는 늘 같은 옷차림이셨다. 낡은 베이지색 모자, 회색 점퍼, 오래 신어 반질반질해진 운동화. 그리고 항상 주머니에는 비닐봉지 하나를 넣고 다니셨다. 처음에는 그저 쓰레기라도 주우시려나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를 따라가 보았다. 할아버지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근처 작은 공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시더니, 그 안에 든 빵 부스러기들을 꺼내셨다. 매일 아침 찾아오는 비둘기들과 참새들이 할아버지 주위로 모여들었다.
"얘들아, 잘 잤니? 오늘도 왔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참 부드러웠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새들에게 말을 건네셨다. 새들은 할아버지의 발치에서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새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할아버지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할아버지에게, 이 작은 새들과의 만남이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할아버지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셨다. 그래도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셨다. 어느 날은 제가 동행을 하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이건 할아버지만의 시간이란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실 때도 계속 걱정하셨다. "새들이 기다릴 텐데." 마지막까지도 그 작은 생명들을 걱정하시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아직도 선명하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 궁금해서 그 공원에 가보았다. 놀랍게도 새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나는 주머니에서 빵 부스러기를 꺼냈다. 할아버지처럼 새들에게 말을 건넸다.
"얘들아, 잘 잤니?"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할아버지가 매일 이곳에 오셨는지.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삶의 의미를 찾으셨던 것이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지금도 가끔 그 공원에 들른다. 새들을 보며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세상에는 거창하지 않은 작은 행복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행복이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가르쳐주셨다.
할아버지가 걸으시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아침 산책'이 필요한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작지만 특별한 행복.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할아버지의 낡은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매일 아침 그 공원을 찾는다. 새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빵 부스러기를 뿌리며 생각한다.
"할아버지, 저희가 잘 지키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이 작은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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