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차 한 잔을 마시며 옛 사진첩을 조용히 들춰보다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했어요. 하얀 원피스 자락을 살랑이며 수줍게 웃고 계시는 스무 살의 엄마는 마치 갓 피어난 봄날의 벚꽃처럼 아름다우셨죠. 그 사진을 어루만지다 문득 엄마의 손이 떠올랐어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손은 늘 거칠었답니다. 가는 주름이 그물처럼 새겨진 손등, 굳은살이 수놓은 듯 박힌 손바닥, 찬물에 튼 손끝... 그 소중한 손으로 엄마는 매일 아침 동틀 무렵부터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상을 정성스레 차리셨고, 그릇을 닦으셨으며, 빨래를 널으셨죠.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도, 꽁꽁 얼어붙은 겨울 아침에도 그 손은 한시도 쉬지 않고 사랑을 전했어요.
초등학교 시절이었죠.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보면 교복은 늘 향긋하게 다려져 걸려있었고, 도시락은 따뜻한 마음을 담아 예쁘게 싸여 있었어요. 그때는 그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죠. 엄마의 손이 얼마나 지치고 아팠을지, 그 손끝에 스며든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을지 철없는 마음에 미처 알지 못했답니다.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서며 저는 엄마와 자주 다투었어요. "왜 나만 이렇게 답답하게 하시는 거예요?"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가녀린 한숨을 내쉬며 문밖에서 저를 기다리셨어요. 그리고 한참 뒤에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 제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셨답니다. 그때조차 저는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따스하고 포근한지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어요.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가고 난 뒤, 처음으로 엄마의 빈자리가 마음 한켠을 아프게 파고들었어요. 특히 아플 때면 더욱 그랬답니다. 이마에 살포시 댔던 엄마의 손, 밤늦게까지 죽을 끓여주던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 베개를 적시며 울었죠. 주말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정성스레 담아 싸주셨어요. "엄마 손맛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라고 말하면 엄마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셨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품에 안게 되면서 저는 조금씩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제 아기를 위해 밤새 젖병을 데우고, 기저귀를 갈고, 열이 날 때면 떨리는 마음으로 이마에 손을 얹어보며 저도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엄마의 거칠어진 손은 우리 가족을 위한 헌신의 흔적이었고, 그 손길 하나하나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었다는 걸요.
이제는 제가 엄마의 손을 살며시 잡아드려요. 예전처럼 보드랍지는 않지만, 여전히 따스함이 가득한 그 손. 세월이 흘러 주름은 더 깊어지고 힘은 빠져가도, 엄마의 손은 제게 가장 편안한 안식처예요. 그 손이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를, 그 손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을 이제는 온전히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답니다.
지금도 엄마는 제 어깨를 다정히 토닥이시며 "우리 딸..."하고 애틋하게 부르세요. 그 목소리에 담긴 따스한 정을, 그 손길에 스민 깊은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찡하게 저려옵니다. 엄마의 손... 그것은 제 인생의 가장 포근한 기억이자,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의 언어랍니다.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