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모니터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책상 한켠에는 아들의 중간고사 시간표가 놓여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번 달 실적 보고서가 켜져있다. 40대의 책상은 언제나 이렇게 두 개의 시간을 품고 있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팀장님, 이 부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그의 눈빛에서 15년 전 나의 모습이 스친다. 그때의 나도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이었을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점심시간, 약 봉투를 꺼내며 동기와 눈이 마주친다. 그도 어느새 위장약을 꺼낸다. 말없이 웃으며 약을 삼키는 우리. 젊었을 땐 소주 병을 기울이던 자리에서 이제는 약병을 비우고 있다.
"아버지 병원비가 만만찮네요." 동기의 한숨 섞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어머니 병원비와 아들 학원비 사이에서 매달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까. 청춘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지만, 40대의 가난은 책임감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져 어깨를 누른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우연히 폰 갤러리를 열었다가 10년 전 사진을 발견했다. 첫 팀장 발령받던 날, 아내와 어린 아들이 꽃다발을 들고 축하해주던 순간이다. 그때는 미래가 더 선명해 보였다. 지금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묘하게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책상 서랍 속에는 언제부턴가 모으기 시작한 창업 관련 자료들이 쌓여있다. 퇴직금으로 시작하는 작은 가게, 혹은 프리랜서로의 전환. 아직은 꿈만 꾸는 단계지만, 이런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설렌다. 40대의 꿈은 20대처럼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더 구체적이고, 더 간절하다.
모니터를 끄며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책상 위에는 내일 할 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들 상담 예약, 어머니 병원 진료, 팀 실적 보고서... 40대의 책상은 늘 바쁘다. 하지만 그 바쁨 속에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책임이, 그리고 우리의 작은 꿈들이 함께 숨 쉬고 있다.
이제 막 40대에 접어든 후배가 종종 묻는다. "선배님, 40대는 어떠세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한다. "20대의 열정과는 다르지만, 40대만의 깊이가 있어. 실수해도 덜 두렵고, 성공이 조금 더 멀어도 덜 조급해. 그리고..." 잠시 멈추었다가 덧붙인다. "가끔은 더 꿈꾸게 돼."
형광등을 끄고 나오는 사무실. 어둠 속에서 내 책상이 희미하게 빛난다. 그곳에 놓인 것들은 단순한 업무가 아닌, 40대라는 시간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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